청산리전투와 김좌진 장군 독립을 향해
청산리전투는 1920년 10월 21일 김좌진 장군을 중심으로 뭉친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한 전투입니다.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1920년대부터 만주 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이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대표적인 투쟁이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입니다. 오늘은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 장군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 영웅이 탄생하다
1920년대는 만주 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시기입니다. 일본군은 독립군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최신 무기로 무장한 군인들을 만주 지역에 파병합니다. 수적으로도 불리했지만 최신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을 상대로 전면전을 펼치는 건 독립군에게 너무 불리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형을 활용해 일본군을 무찌르기로 결심합니다. 1920년 6월 홍범도 장군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연합부대가 봉오동에서 일본의 월강추격대를 박살 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일본군을 상대로 독립군은 첫 승리를 거둡니다. 열받은 일본은 더 많은 군사들을 만주 지역으로 보냅니다. 몰려오는 적을 피하던 홍범도 장군은 운명처럼 김좌진 장군을 만납니다. 그리고 김좌진 장군이 이끌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 장군이 이끌던 대한독립군 등의 연합부대가 청산리에서 전투를 준비합니다. 평소 역사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앞에서 언급한 두 개의 전투와 두 명의 장군에 대해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누가 봐도 불리한 전투였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적을 만들어낸 전투였기 때문입니다. 연속으로 승리를 거머쥐며 국내를 포함해 국외에 있는 많은 독립군들의 사기를 상승시키기도 했습니다.
하늘도 독립군을 도왔다
전투가 일어나기 하루 전날 북로군정서가 백운평 고지를 점령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10월 21일 독립군을 처단하기 위해 출동한 일본군 추격대가 백운평 계곡 안에 도착합니다. 독립군들은 적들이 자신들이 매복해있는 곳까지 다가왔을 때 기습 공격을 진행합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숨죽여 기다리고 있던 독립군들의 공격에 일본군은 방어도 제대로 못하고 전멸합니다. 추격대가 전멸하고 뒤따라 백운평 계곡 안으로 들어온 일본군 정식 군대와 치열한 전투를 펼칩니다. 기습 공격으로 일본군 추격대와 정식 군대의 군사 총 200명이 사망합니다. 백운평에 이어 어랑촌, 완루구, 천수평 지역에서 북로군정서 단체를 중심으로 뭉친 독립군 연합부대는 계속해서 전투를 펼칩니다. 무려 6일 동안 10번의 치열하게 싸웁니다. 6일간 10번의 전투 끝에 일본군은 약 1,200명이 사망하고 독립군은 100명 정도 사망합니다. 단, 한 명조차도 사망하지 않고 전투에서 승리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피해를 최대한 줄이며 이긴 값진 승리입니다. 정말 기적 같은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도 독립을 간절히 소망하는 독립군을 도와준 것입니다.
하늘의 별이 된 영웅
전투가 끝난 후 김좌진 장군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독립군 연합부대는 만주 지역에서 출발해 계속해서 북쪽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1920년 연말쯤에 러시아와 인접한 북만주 밀산에 도착합니다. 밀산에 총 10개의 독립군 부대가 모였고 이듬해에 대한독립군단이 결성됩니다. 김좌진 장군은 대한독립군단 부총재로 취임합니다. 비극적인 사건 자유시참변이 일어나고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반공주의자가 됩니다. 이후 만주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병행합니다. 독립군 양성을 위해 힘쓰며 다양한 활동을 펼칩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여러 독립활동을 펼치던 중 1930년 1월 24일 하늘의 별이 됩니다. 당시 41살이었던 김좌진 장군은 공산주의자의 사주를 받은 박상실이 쏜 총에 맞아 순국합니다. 김좌진 장군은 돌아가실 때 이런 말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아직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는데 죽음을 맞이하는 게 한이 맺힌다고 유언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만약 김좌진 장군이 1930년에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계셨다면 우리나라 독립이 좀 더 빨리 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독립을 위해 인생을 바친 김좌진 장군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이름 모르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분들에게 늘 감사드리는 마음을 가진 후손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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