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왕후 폐위 사건과 복위 사건
인현왕후는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의 두 번째 부인입니다. 그리고 1689년 기사환국이 일어나고 왕비 자리에서 쫓겨나 궁궐 밖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5년이 지나고 1694년 갑술환국으로 다시 왕비의 자리로 복귀하게 됩니다. 한 나라의 왕비가 폐서인이 되었다가 다시 왕비가 되는 특이한 사건을 겪은 인현왕후 폐위 사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서인 세력의 지지를 받다
인현왕후는 숙종의 두 번째 부인이자 계비입니다. 숙종의 첫 번째 부인은 인경왕후 김씨였습니다. 하지만 천연두에 걸려 20살의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합니다. 인경왕후가 별세하고 1년이 지난 후에 숙종은 인현왕후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됩니다. 인현왕후는 서인 명문가 집안의 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서인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더 키우기 위해 그녀를 왕비 자리에 앉힙니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녀는 남편 숙종에게서 따뜻한 눈길 한번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남편의 옆에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장옥정이라는 여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숙종의 어머니이자 인현왕후의 시어머니인 명성왕후는 장옥정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명성왕후 김씨는 그녀를 매우 간사하고 악독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장옥정을 궁궐 밖으로 쫓아내 버립니다. 시간이 지나고 명성왕후가 별세하고 장옥정은 다시 궁궐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 인현왕후가 장옥정의 입궁을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당시 숙종과 인현왕후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왕의 자리를 물려받을 아들이 있어야 하는데 왕비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왕은 초조해합니다. 그녀는 남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장옥정을 다시 궁궐로 불러들이라고 숙종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장씨는 다시 궁궐로 돌아오고 1688년 아들을 출산합니다. 이 아들이 훗날 조선 20대 왕 경종이며 장옥정은 희빈 마마가 됩니다.
폐위 사건의 배경
희빈 마마가 된 장옥정은 남인 세력의 지지를 받는 후궁이었습니다. 1688년 장씨가 아들을 출산하자 숙종은 아들을 후계자로 삼겠다고 발표합니다. 그러자 인현왕후를 지지하던 서인 세력들은 이를 반대합니다. 당시 인현왕후의 나이가 22살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숙종은 이를 무시하고 장씨의 아들을 후계자로 책봉합니다. 남인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장희빈의 아들이 후계자로 임명되니 매우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서인들은 계속 반대했습니다. 아들을 원자로 책봉하고 숙종은 남인 세력을 대거 등용하고 서인들을 쫓아냅니다. 바로 이 사건이 1689년에 일어난 기사환국입니다. 기사환국으로 인해 인현왕후는 폐위되어 궁궐 밖으로 쫓겨납니다. 그리고 당시 희빈 마마였던 장옥정이 왕비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복위 사건의 배경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당하고 장희빈과 남인들은 권력을 점점 키워나갑니다. 장희빈과 남인들의 행복한 시절도 잠시 5년이 지나고 1694년 갑술환국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갑술환국은 폐비 민씨의 복위 운동을 반대하던 남인들을 내쫓고 다시 서인들을 등용한 사건입니다. 5년 동안 남인들과 함께 나랏일을 돌본 숙종은 남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5년 전 기사환국 때처럼 남인들을 궁궐 밖으로 내보내고 서인 세력을 다시 궁궐로 부릅니다. 서인들을 다시 등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인현왕후도 함께 부릅니다. 당시 왕비였던 장희빈이 계속 나쁜 짓을 해서 장씨를 다시 후궁으로 강등시키고 인현왕후를 왕비로 임명합니다. 이렇게 인현왕후는 공식적으로 두 번이나 왕비로 임명된 조선시대 최초의 여인입니다. 인현왕후는 폐위 후 다시 복위되기까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몸이 많이 쇠약해졌습니다. 궁궐로 다시 돌아오고 건강이 안 좋아진 민씨는 결국 1701년 3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생전 남편에게 사랑 한번 받지 못하고 궁궐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왕비가 된 인현왕후의 인생이 가혹하게 느껴집니다. 폐위되고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상상이 안 됩니다. 스트레스로 건강이 나빠진 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인현왕후 폐위 사건과 복위 사건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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