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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

한산도 대첩 이순신 이름 세 글자를 알리다

한산도 대첩 이순신 이름 세 글자를 알리다

한산도 대첩은 당시 조선 백성들과 일본 수군들에게 이순신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널리 알린 위대한 전투입니다. 우리나라 3대 대첩 중 하나로 한산도 대첩 이후 왜인들은 이순신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왜인들에게 공포감을 선사한 어마 무시한 전투입니다.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이자 위대한 역사라고 할 수 있는 한산도 대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출처 구글 이미지 충무공 이순신

존경하는 나의 사령군

1592년 4월 13일 아픈 역사 중 하나인 임진왜란이 발발합니다. 당시 조선의 임금은 선조였습니다. 선조는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수도 한양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갑니다. 백성들은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본인은 살겠다고 개경과 평양 그리고 의주까지 계속해서 북쪽으로 피난을 갑니다.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충무공 이순신은 여수에서 첫 출정을 합니다. 그리고 옥포와 합포, 적진포에서 일본 수군을 격침시킵니다. 1차 출정에서 왜선 42척을 파괴했으며 조선 수군 함대는 단 한 척도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두 번째로 출정을 하게 됩니다. 이때는 당포와 당항포 율포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왜선 67척을 박살 내고 1차 때와는 다르게 조선 수군 13명이 사망합니다. 이순신은 사망한 병사들을 가족의 품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유족들의 생계를 책임집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부하 장군들과 병사들은 감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모시는 이순신 장군을 더욱 존경하게 됩니다. 자신의 사령군을 진심으로 존경하다 보니 이들의 사기는 하늘 끝까지 상승합니다. 자신의 사람들을 챙길 줄 아는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전투 능력도 뛰어나지만 인간성도 정말 훌륭한 분입니다.

자존심 상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존심이 상합니다. 육지 전투는 물론 바다에서의 전투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달아 패배할 것이라고는 조금이라도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분노에 가득 차게 됩니다. 그는 당시 일본 최고의 수군이었던 구키 요시타카를 호출합니다. 그리고 이순신을 잡아올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구키 요시타카는 이순신이 보유하고 있는 함대와 병사의 수에 2배를 지원하면 잡아오겠다고 답변합니다. 동일한 병력으로는 절대 이순신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추가로 한 명의 장수를 또 호출합니다. 그의 이름은 와키자카 야스하루입니다. 해적 출신 집안의 아들로 해전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와키자카는 나라에서 제일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평소 유명해지고 싶은 야망도 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감에 사로잡혀 혼자 공을 세워 유명해지겠다는 꿈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1592년 7월 8일 그의 꿈을 박살 내버리는 한산도 대첩이 발발합니다.

3차 출정에서도 역시 승리를 거두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1592년 7월 6일 세 번째로 출항합니다. 출항 후 노량 지역에서 원균 장군을 만납니다. 원균의 판옥선 7척과 함께 약 60척의 조선 수군 연합 함대가 한산도에 도착합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73척의 함대를 이끌고 거제도 북쪽 바다에 주둔합니다. 와키자카의 수군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순신 장군은 유인 작전을 구상합니다. 견내량 바다는 굉장히 좁고 암초가 많아 유인하기에 좋은 장소입니다. 이순신은 부하에게 와키자카를 유인해오라고 명령합니다. 5척의 함대가 와키자카를 유인하기 위해 견내량으로 들어갑니다. 와키자카는 뒤도 안 돌아보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자신감이 넘쳤고 조선 수군을 무시해서 5척의 함대를 쫓아 견내량으로 진입합니다. 사정거리에 들어왔을 때 조선 수군은 학익진을 형성해 공격을 퍼붓습니다. 조선의 판옥선은 정면으로 포를 쐈다가 옆으로도 쐈다가 빠르게 움직이며 왜군을 무찌릅니다. 한산도 대첩에서 와키자카의 함대 59척이 격침되고 8천 명에서 9천 명 정도의 왜군이 사망합니다. 와키자카 역시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게 됩니다. 살아남은 와키자카와 왜군은 한산도로 도망칩니다. 당시 한산도는 무인도였기 때문에 식량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순신은 한산도로 쳐들어가지 않고 원균에게 무인도를 포위하라고 명령합니다. 왜군들은 탈출할 길이 없어 굶어 사망하게 됩니다. 와키자카는 10일 동안 미역을 먹으며 끝까지 버팁니다. 10일이 지나고 원균이 방심한 사이에 와키자카는 한산도에서 탈출합니다. 한산도 대첩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그가 내린 명령은 다시는 조선군과 바다에서 전투를 금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일본군들에게 거대한 공포감을 선물한 전투였습니다. 위대한 역사가 우리나라의 역사여서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이렇게 위대한 승리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