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 조선시대 비운의 왕세자 이야기
효명세자는 22살의 어린 나이에 갑자기 요절한 조선시대 비운의 왕세자입니다. 그는 조선 제23대 왕 순조의 큰아들로 추후 왕이 될 세자였습니다. 예술 쪽에도 재능이 있었고 여러 분야로 재능이 있는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왕이 되었더라면 우리나라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을 만큼 능력 있는 남자였습니다. 오늘은 안타까운 인재였던 효명세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할아버지 정조를 닮은 이영
효명세자의 이름은 이영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 23대 임금 순조이고 할아버지는 정조 대왕입니다. 그는 할아버지를 닮아 어릴 때부터 매우 영특했습니다. 조선시대 세자들을 모아놓고 봤을 때 이영이 가장 똑똑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나라에 꼭 필요한 인재였습니다. 1809년에 태어난 효명세자는 19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 순조를 대신해 나랏일을 돌봅니다. 11살에 왕이 된 순조는 어릴 때부터 정사를 돌보느라 몸이 많이 쇠약했습니다. 그래서 자주 아파 누워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기 때문에 아파도 나랏일을 돌봐야 해서 건강을 관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나랏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효명세자입니다. 아들이 11살이 되자마자 임금은 아들에게 대리청정을 시킵니다. 1827년 효명세자가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정치를 하게 됩니다. 1830년 어린 나이에 요절하기 전까지 그는 단순 명쾌하게 조선이라는 나라를 잘 이끌어 갑니다. 조선시대 후기 세도정치 가문 중 하나였던 안동김씨는 그의 외갓집이었습니다. 어머니 순원왕후도 안동김씨 사람이었습니다. 순조가 재위하던 시절에는 세도정치가 심하지 않았습니다. 신하들의 세력이 왕을 뛰어넘을 만큼 어마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왕세자는 안동김씨 가문을 압박하는 행동은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세도정치 가문들과 협력해 나랏일을 처리해나갔습니다.
왕권강화를 위해 노력하다
효명세자는 아버지를 대신해 정사를 돌보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백성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펼치고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라의 기강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왕세자의 신분으로서 나랏일을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능력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신하들도 그를 왕세자가 아닌 왕으로 생각하고 모시게 됩니다. 신하들도 존경하는 왕세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를 세종대왕 이후로 우리나라의 태평성대를 이끌 위대한 왕이 될 인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왕세자가 일을 잘한다고 궁궐 안과 궁궐 밖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순조 임금은 아들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자기 대신 완벽하게 나랏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뿌듯해했습니다. 권력은 아버지와 아들 부자 사이에도 나눌 수 있음을 보여준 좋은 사례입니다. 임금은 똑똑한 아들 때문에 편히 쉬면서 병을 치료할 수 있어 행복해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1827년 효명세자의 아들 헌종이 태어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임금에게 비상 소식이 전해집니다. 바로 왕세자가 각혈을 했다는 소식입니다. 소식을 듣고 놀란 임금은 바로 아들에게 달려갑니다. 건강하던 아들이 갑자기 자신처럼 아프게 된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안타까운 인재가 하늘로 떠나다
아파서 쓰러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830년 효명세자가 22살의 어린 나이에 요절합니다. 자신의 어린 아들 헌종을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떠나게 됩니다. 장차 조선이라는 나라를 이끌어 갈 왕이 될 왕세자였는데 임금과 신하 모두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슬퍼합니다. 효명세자가 공부를 매우 잘한다거나 할아버지 정조처럼 천재인 건 아니었지만 예술 쪽으로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특히 음악 쪽으로 재능이 있어서 궁중음악인 아악 악보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지금의 음악감독처럼 음악 공연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림도 잘 그려서 예술인의 면모를 보여줬다고 합니다. 만약 효명세자가 왕이 됐었더라면 우리나라 문화 예술 발전은 더욱 빨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예능인들과 예술 작품들이 나왔을 것입니다. 아버지 순조는 자식이 세상을 먼저 떠나자 매우 슬퍼합니다. 심지어 한 명밖에 없는 유일한 아들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몸이 허약했던 임금은 아들을 잃고 점점 더 기력을 잃어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자로 자신의 손자이자 효명세자의 아들인 훗날의 헌종을 왕세손으로 임명합니다. 1834년 순조 임금이 별세하고 당시 8살이었던 어린 손자 헌종이 왕이 됩니다. 갑작스럽게 요절한 비운의 왕세자 효명세자가 왕이 되었더라면 어땠을지 매우 궁금합니다. 분명 더 빨리 살기 좋은 나라가 됐었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비운의 왕세자 효명세자 이야기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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