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잔혹한 행동을 하게 된 배경
광해군은 1608년부터 1623년까지 재위한 조선 제15대 임금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14대 국왕 선조로 선조가 재위하던 당시 임진왜란이 발발했습니다. 열등감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분명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고 훗날 신경쇠약에 걸리게 됩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그는 이상 증세를 보이며 말년에 많은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이로 인해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광해군은 왜 잔혹한 행동을 저지르게 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복잡하고 치열했던 삶
광해군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버지 선조 밑에서 세자로 있었던 시절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전성기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왕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땐 나라를 잘 다스렸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빠르게 타락해간 조선의 국왕입니다.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전성기 시절이었던 왕세자 광해군은 백성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당시 왕이었던 선조는 수도 한양을 버리고 북쪽으로 피난을 갑니다. 의주까지 도착한 국왕은 만주로 넘어가 작은 나라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은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했습니다. 당시 왕세자였던 광해는 목숨을 걸고 이곳저곳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보살핍니다. 심지어 병사들도 독려하고 필요한 물품을 지원해주며 백성들을 세심하게 살펴봅니다. 왕이 해야 할 일을 젊은 왕세자가 하는 것을 보고 백성들은 그는 분명 훗날 좋은 국왕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전쟁으로 나라가 어수선했던 당시 리더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기 때문에 신하들도 그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분명 누가 봐도 좋은 리더이자 좋은 국왕이 될 세자였습니다. 그리고 1608년 드디어 왕세자 신분에서 벗어나 조선의 15대 임금이 됩니다.
기대를 저버린 국왕
백성들과 신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광해군은 왕이 됩니다. 하지만 왕이 되고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점점 나쁜 쪽으로 변해갑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나쁜 국왕이 되어갑니다. 그는 굉장히 의심이 많았습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이 된 배경에는 아버지 선조가 있습니다. 선조는 아들 광해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신하들이 아들을 칭찬하면 선조는 자신의 아들을 비판적으로 보며 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비가 서거하고 왕은 새로운 왕비를 맞이합니다. 바로 인목대비입니다. 그리고 인목대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 영창대군을 출산합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 태어나자 광해군은 불안해합니다. 아버지가 자신이 아닌 새로운 아들을 임금으로 삼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분명 훗날 동생 영창대군이 자신을 위협할 존재가 될 것이라고 그는 확신합니다. 선조가 서거하고 그는 이를 직감이라도 했는지 형제끼리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유서를 남깁니다. 왕이 된 광해군은 계속해서 인목대비와 영창대군을 중심으로 세력이 생겨 자신을 위협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들을 의심합니다. 그러던 중 그에게 누군가가 왕을 몰아내려고 반역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단지 소문일 뿐일 수도 있으니 조사를 하면 되는데 광해군은 의심이 많은 성격 때문에 면밀하게 조사를 하지 않고 피의 숙청을 시작하게 됩니다.
무섭고 두려운 군주가 되다
그는 자신을 누군가 해치려고 한다는 소문을 들으면 진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약 10년 동안 피의 숙청을 진행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무서운 걸 넘어서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그를 왕의 자리에서 쫓아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짜 역모가 준비되고 있을 때 광해군은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을 듣지만 더 이상 피를 보기 싫다고 무시해버립니다. 몇 월 며칠에 누가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구체적인 소식까지 듣지만 무관심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다 진짜 역모가 일어나게 됩니다. 무엇보다 광해군이 폐위된 건 인목대비를 쫓아내고 동생 영창대군을 처단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유교 국가였는데 유교 국가에서 가족을 처단하는 건 말이 안 되는 행동이었습니다. 이것이 반역을 도모하게 만든 충분한 계기가 되었고 타당한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광해군이 가족까지 자신의 손으로 처단할 만큼 잔혹한 사람이 된 것은 아버지 선조 임금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자신의 아들을 미워하고 성인이 된 광해군을 두고 어린 영창대군을 후계자로 임명하려고 했던 모든 행동들이 그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매일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의심이 많아지고 정신적으로 쇠약해져 난폭해진 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이 되지 않는 행동을 저질렀지만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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