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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

인천상륙작전 성공 확률 5000분의 1

인천상륙작전 성공 확률 5000분의 1

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9월 15일 밤 12시 맥아더 장군의 지휘 하에 진행되었습니다. 작전명은 Operation Chromite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일어난 한국전쟁 초반 열세에 몰려있던 한국군이 전세를 역전시켰던 작전입니다. 성공 확률은 5000분의 1로 상당히 무모한 작전이었습니다. 현재까지 가장 위대하고 대표적인 작전으로 알려진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는 맥아더 장군

민족의 비극 한국전쟁

민족의 비극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일어났습니다. T-34 탱크 등 소련 탱크로 무장한 북한 김일성의 부대는 기습 남침을 감행합니다. 사흘 만에 북한군이 서울을 함락합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낙동강 동쪽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이 북한군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미국은 한국 전쟁을 북한의 남한 침략 전쟁으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16개국 군인들로 구성된 유엔군을 이끌고 부산항으로 입항합니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16개국은 미국, 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에티오피아, 벨기에, 프랑스, 남아프리카 공화국, 룩셈부르크입니다. 그리고 인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독일은 의료를 지원합니다. 이외에도 물자를 지원해 준 나라와 전쟁이 끝난 후 복구 사업을 지원해 준 나라가 많습니다. 이웃 나라의 평화를 위해 전쟁에 자진해서 참여한 참전 국가와 병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당시 부산항으로 입항한 유엔군의 총사령관은 더글라스 맥아더였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한 맥아더 장군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

16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군을 이끌고 맥아더 장군은 부산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8월 1일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합니다. 맥아더 장군은 현재 전세가 불리하기 때문에 전면전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한 방법이 바로 인천상륙작전입니다. 남해와 서해를 돌아서 인천으로 조심스럽게 진입해 북한군을 기습 공격하는 작전이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이 인천을 상륙 지역으로 결정하게 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서울에서 34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을 되찾는 건 수도를 되찾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군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수도권 지역을 되찾아 길을 차단하면 북한군의 보급로를 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계획을 듣게 된 미국은 반대를 합니다. 인천으로 들어가는 수로가 너무 좁아 함정이 신속하게 이동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북한군이 공격한다면 피해가 클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조수간만의 차이가 크다는 이유로 반대합니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밀물 때 신속하게 상륙을 해야 하는데 물이 차있는 시간이 2시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군인들이 상륙하는 도중 북한군이 공격할 경우 진퇴양난의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와 함께 성공 확률은 5000분의 1로 매우 낮은 확률이었습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은 다들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5000분의 1의 확률이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어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북한군도 이를 알고 경계를 허술하게 하는 지역이 바로 인천이었기 때문입니다. 의견을 굽히지 않은 맥아더 장군은 작전 날짜를 잡아버립니다. 바로 9월 15일 밤 12시였습니다. 상륙 작전 성공에 주어진 시간은 단 2시간뿐이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다

맥아더 장군은 두 가지 작전을 계획합니다. 첫 번째 작전은 성동격서 방법입니다. 인천 반대편 동쪽에서 북한군의 시선을 끌어 방심하고 있는 서쪽을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명한 장사 상륙작전이 바로 성동격서 방법으로 인해 펼쳐진 교란작전이었습니다. 장사리 전투로 북한군의 시선은 동쪽으로 쏠리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X-RAY 작전입니다. 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해군 첩보부대를 구성합니다. 첩보부대는 은밀하게 인천 지역으로 잠입을 시도합니다. 지역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북한군의 병력 규모와 무기의 위치 등의 정보를 얻게 됩니다. 이외에도 켈로 부대라는 특수부대가 있었습니다. 켈로 부대는 인천 앞바다에 위치한 팔미도 섬에 상륙합니다. 그리고 북한군과 치열한 교전 끝에 등대를 점령합니다. 등대에서 불빛을 켜서 맥아더 장군과 한국군, 유엔군을 인천으로 부르게 됩니다. 모두가 반대했던 인천상륙작전은 성공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합니다. 한국군은 북진하면서 북한군을 몰아내고 압록강과 두만강 지점까지 밀고 올라가게 됩니다. 오늘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버린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알아봤습니다.